스파이더맨 영화를 본 적 있는가? 워낙 역사도 깊고 리메이크도 많이 되어 못 본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 것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알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유명한 구절이 있다. 바로 벤 삼촌이 했던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다. 처음 이 구절을 들었던 것이 샘 레이미 감독의 첫 번째 스파이더맨 영화가 개봉했을 때였으니, 아득한 세월이 흘렀다. 그 긴 세월 동안 이 뜻을 곱씹어 이해해보려 하진 않았다. 카르페디엠, 아모르파티 뭐 그런 말처럼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워낙 유명한 말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스파이더맨에서 또 듣게 됐는데, 막연히 궁금증이 떠올랐다. 왜? 왜 책임이 따라? 사실 잘 생각해보면 '책임'이라는 것은 잘 이해가 안 됐다. 영웅이 무슨 책임을 져야 된다는 거지? 빌런을 잡지 않아서 그 빌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영웅 탓이라는 거야? 아니면 영웅은 힘이 세니까 빌런을 잡다가 기물 파손을 하거나 시민이 다치면 안 되니까 조심하고 잘 고민하라는 거야? 스파이더맨과 함께한 세월이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의문이 생겼다는 게 헛웃음이 났다.
'책임'을 사전에 검색해보았다. 첫 번째는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라는, 영어로는 Responsibility에 해당하는 책임이 있었다. 두 번째는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이라는, 영어의 Accountability라는 책임이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실생활에서 책임이라는 단어의 쓰임새는 항상 두 번째 의미였기 때문이다.
책임이라는 단어는 '-지다'와 짝꿍이 되어 사회생활에서 노이로제를 일으키는 단어다. '너 이거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어?' '책임질 수 있으면 해.' '이건 네가 책임져야지.' 따위 말이다. 그러므로 사회생활에서 책임은 무서운 것이었다. 책임은 범위를 넓게 잡았다가 일 터지면 괜히 문제 생기고 피곤해지는 것이었다. 책임은 폭탄 돌리기처럼 타인에게 넘기고 넘기다 나에게 넘어오는 것이었다. 책임은 어떻게든 줄이고 다른 이득을 챙기는 게 스마트한 삶이 되는 그런 것이었다.
책임의 뜻을 두 번째 의미로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비단 나뿐만이 아님을 느낀다. 두 번째 의미의 책임은 마치 집의 울타리를 연상시킨다. 울타리 밖에 쓰레기가 쌓인 것은 냄새가 나도 치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울타리 밖에서 누가 죽으면 울타리 밖의 누군가의 탓이지 내 탓은 아니라는 것이다. 울타리 밖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내가 도와주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울타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화된다. 경쟁하듯이 울타리를 더욱 높여 밖에 무슨 일이 있던 보고 싶지도 않아한다. 경쟁하듯이 본인의 울타리를 조여 울타리 밖의 일은 울타리 밖의 누군가의 탓임을 칼같이 명확히 한다. 집으로 치면 아파트가 연상된다고 할까나... 유현준 교수님의 말처럼 공간이 생각의 구조를 이미 바꿔 버린 것이 아닐까 하며 실소가 나왔다.
이내 곧 부끄럽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결국 책임이라는 단어에 노이로제가 걸린 것은 나의 무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책임지다 피해보지 않으려 도망치던 삶은 책임의 책임이 아니라 내 책임이었던 것이다. 책임의 첫 번째 의미, Responsiblility, 즉 Response(반응) + able(할 수 있는)의 책임이란 내가 상황에 반응할 수 있는 나의 영향력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내 일상에 온전한 영향력을 갖는 것이, 삶의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인생에 책임을 지라는 것은,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으며 인생이 이렇게 된 이유는 다른 사람과 사회의 책임이라며 탓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능동적으로 반응해가며 삶을 꾸려나가고 있음을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좁디좁은 나의 울타리를 열고 나가 내가 할 일을 하고, 남을 돕고, 선한 영향력으로 내 울타리 밖 주변 사회의 울림에 응답하고 반응하며 아름답게 가꿔가라는 것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 또한 그 그릇이 깊고 넓으니 선한 영향력으로 가득하게 채워나가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 의미의 책임이 중시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딱딱하고 차가운 울타리와 같은 책임에서 문을 열고 나와 따뜻하고 심지 굳은 책임으로으로 삶과 주변을 채우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첫 번째 의미가 첫번째 의미가 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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